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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독후감] '정보습득의 효율성'의 이면 (만들어진 진실)

by 어썸오184 2021.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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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진실

2018년 전 세계 18개국에서 출간된 <만들어진 진실(원서명 : Truth)>은 진실은 아흔아홉 개의 얼굴을 가졌으며,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목적에 맞게 진실을 편집하고 소비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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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습득의 효율성'의 이면

2019.09.01

가짜뉴스, 최근 들어 정말 자주 듣는 단어이다.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거짓정보를 퍼뜨린다는 점에서 가짜뉴스는 오보(誤報)와는 다른 개념이다. 작금의 언론과 미디어는 가짜뉴스 전쟁중이다. 가짜뉴스가 넘쳐나고 서로가 서로를 가짜뉴스라고 주장하기 바쁘다. 언론이든 유튜브든,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말이다. 몇몇 책임감 있는 언론과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은 쏟아지는 기사들의 팩트를 확인하기 바쁘다. 이제는 새로운 소식을 들으면 그게 정말 사실인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나마 가짜뉴스는 시간이 좀 걸리고 힘들더라도 거짓임을 밝혀내면 어떻게 책임이라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만들어진 진실>은 거짓말 한마디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사람을 오도할 수 있음을 수많은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이 내게 의미가 있었던 것은 정보 습득의 관점에서 내가 그동안 미디어를 소비하던 행태에 대해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허위 정보뿐만이 아니라, 사실일지라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서 가짜뉴스에 버금가는 잘못된 현실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 예시와 분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음 두 문장이 있다.

  • 인터넷 덕분에 전 세계 지식을 폭넓게 접할 수 있다.’
  • 인터넷 때문에 잘못된 정보와 혐오의 메시지가 훨씬 더 빨리 확산된다.’

우리가 아는 한 두 문장은 모두 사실이다. 인터넷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어떤 문장을 보든 인터넷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인터넷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이 있다면, 둘 중 어떤 사실을 접하느냐 혹은 어떤 사실을 먼저 접하느냐가 그 사람이 가질 인터넷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한 부분만 지나치게 강조해서 보여주는 현실은 우리가 추구하는 올바른 현실 인식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사건이든, 한 사건 안에는 수많은 진실이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사건을 구성하는 진실은양가적이고 복합적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진실들 중에서 자신의 이해(利害)와 가치관에 따라 몇 개를 선별해서 받아들인다. 좀 더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를 남들에게 말하며 자신의 뜻과 함께하도록 설득할 것이다.

이러한 행동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한 사건과 관련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행위이며 명명백백하게 객관적인 서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고도화되고 다변화하는 현대에선 특히 더욱더 그렇다. 역사가의 주관을 배제하고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던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학에 대한 E. H 카의 비판도 그러한 맥락 안에서 이루어졌다. ‘완전한 객관’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진실이 스스로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러 진실 중 일부만이 발화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선택받고 비로소 발언 기회를 얻는다. 어떤 사실을 말할 것인지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주관이 개입된다. 카는 역사서를 볼 때, 저자뿐만 아니라 저술 시기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발화자가 누구인지를 그가 말하는 사실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말할 때, 어떤 이유로, 왜 말하고 있는지 항상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저자 헥터 맥도널드는 한 사건과 관련해서 각각의 발언자들에게 선택받을 만한 진실들을 ‘경합하는 진실’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한 사건을 서술할 수 있는 100개의 서로 다른 진실 중에서 누군가가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을만한 수십 개의 진실들이 서로 발언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경합하는 것이다. 저자는 경합하는 진실을 발언자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들을 옹호자(advocate), 오보자(misinformer), 오도자(misleader)로 구분한다. 옹호자는 건설적 목표 달성을 위해 경합하는 진실 중에서 다수가 인정할 만한 현실 인식을 이끌어내는 진실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오보자는 악의는 없지만 경합하는 진실 중에서 현실 왜곡을 일으키는 진실을 퍼뜨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오도자는 잘못된 현실 인식을 만들어 낼 것을 알면서도 자기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경합하는 진실을 편집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진실을 편집한다’는 것은 정보를 구성하는 각각의 사실들 자체에는 거짓이 없으나 이들을 자르고 붙이고 비틀면서 왜곡된 인식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하는 발언이 ‘따지고 보면 사실’이라는 점에서 가짜뉴스 유포자보다 더욱 대응하기가 까다롭다.

다행히도 이들이 진실을 편집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 패턴들이 있다. 저자는 진실의 종류를 그것의 성격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누고 오도자들이 이를 편집하는 패턴을 나누어 분석하였다. 그중에서 내게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오도자들이 통계 자료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숫자를 신뢰한다. 어떤 토론이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이를 증명할 통계 수치가 필수적이다. 통계 자료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는 믿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가 숫자를 들이대면 일단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높다. 숫자 자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오도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기준을 적용한 통계를 사용하거나 추세나 인과관계를 조작하고 비교를 통해 숫자에 착시를 일으킬 때 발생한다. 책의 내용 중 오도자들이 통계를 이용하는 방법은 내가 경제 기사를 볼 때 항상 느끼던 의문이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경제 기사는 항상 통계 자료를 기초로 한다. 하지만 같은 통계자료를 놓고도 한쪽에서는 경제가 안정적이라고 말하고 한쪽에서는 경제가 파탄 났다고 말한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고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이 책을 읽고 나름의 기준을 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경제 기사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몇 달 전,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작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OECD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2라는 발언을 했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실제 우리나라의 작년 경제성장률은 OECD 국가 중 17위였기 때문이다. 이낙연 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대정부질의 전 청와대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된다. 청와대는 공식 홈페이지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82.7%로 미국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면서 관련 자료를 덧붙였다. 하지만 여기서 비교대상이 된 국가들은 OECD 국가 전체가 아니라 소위 ‘3050 클럽이라고 불리는 7개의 국가였다. 7개의 국가 중에서 2등을 했다는 것이었다. ‘3050 클럽은 인구 5천만 명 이상, GNI 3만 달러 이상인 국가들의 집합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국제적인 기준도 아니고 우리나라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 명칭이다.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순위를 높인 것이다. OECD 국가 전체 순위도 주의해서 봐야 한다. 작년 우리나라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인 국가들 중에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우리나라와 경제 규모가 많이 차이나는 국가들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한편 뉴데일리는 이러한 정부 발표에 반박하며 "한국 성장률 OECD 상위" 정부 발표는 거짓말꼴찌였다라는 제목의 단독기사를 냈다. 기사는 “OECD20191분기 실질GDP 성장률(이하 경제성장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OECD 전체 회원국(36개국) 35위를 기록했다라고 말하면서 경제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경제정책을 변화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도 덧붙였다.

어떻게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한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17위에서 꼴찌가 될 수 있었을까? 이 기사에서 말하는 1분기 경제성장률(-0.4%)전기대비수치이다. 20184분기의 경제성장률과 비교하여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지난 4분기 한국은 성장률 측면에서 꽤 좋은 성과를 냈었다. 작년 4분기 지표가 좋기도 했고 성장률은 계절의 영향도 받기 때문에 굳이 비교할 거라면 전년 동기즉 작년 1분기와 비교하는 것이 맞다. 작년 1분기와 비교하면 올해 1분기는 1.4% 정도 성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기사의 논리를 그대로 다른 나라에 적용하면 라트비아는 4위에서 34위로 곤두박질친 나라가 되고 일본은 꼴찌에서 16위로 급성장한 나라가 된다. 그럼 라트비아는 경제정책을 변화해야 하고 일본은 계속 유지하면 되는 것일까? 이 기사가 올바른 현실 인식을 이끌어내는 기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느 시기에 어떤 국가, 어느 시점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경제성장률을 2위로 만들 수도, 꼴찌로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발화자의 의도에 의해 결정된다.

같은 자료를 놓고도 발화자의 의도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이런 사례들을 계속 접하다 보면 자칫 진실에 대한 냉소와 회의에 빠져 스스로가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하는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피해자가 되기를 자처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저자는 더 대표성 있고 더 온전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더 짧고, 더 간단하고, 더 자극적인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의 뉴스미디어 이용>(한국언론진흥재단, 2013)에 따르면 포털 사이트 뉴스 섹션의 평균 페이지 뷰와 체류시간을 분석한 결과, 20대는 하루 평균 약 7분 동안 9개의 기사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1개의 기사를 읽는 데 1분도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넘치는 정보들 속에서 효율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하나의 정보를 얻는 데 드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이는 오도자들이 더욱 쉽게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전 세계에서 가짜뉴스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나 또한 기사를 자주 그런 식으로 소비했었다. 때로는 기사를 대충 훑어보고 댓글의 반응을 확인한 뒤 다수의 의견에 편승해 사안을 평가하기도 했었다. 물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그런 행동을 지양했지만 어쨌든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명확한 진실을 찾아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내가 찾은 해답은 정보 습득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다. 모든 정보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갖자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빠르게 찾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나의 사고방식과 현실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내가 미래에 하게 될 결정에 영향을 미칠 정보들에 대해서는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정보 습득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쉽고 빨라졌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보를 습득하는데 드는 비용을 아까워하기 시작했고 맥락을 파악하는 것에 시간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의 핵심에 접근하고 취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에서 본문의 내용을 세 줄로 정리하기를 요구하는 세 줄 요약 바람과 장문의 글을 쓰는 사람들을 벌레에 빗대어 비하하는 용어인 장문충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미디어 소비 행태는 다음의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정보 습득은 정말 과거에 비해 쉽고 빨라졌는가? 나의 대답은 NO이다. 파편적인 정보가 아닌 중요한 진실을 파악하는 데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은 과거와 비슷하거나 약간 나아진 정도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할 것이라고 본다. 내가 진실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동안 남들은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작금의 언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뉴스 소비 행태에 걸맞은 언론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사안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고 여러 관점으로 분석한 길고 지루한기사는 외면당하고 짧고 자극적인 기사는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다. 뉴스에 소비하는 돈과 시간을 아까워하는 우리들이 지금과 같은 언론을 가지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아까워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그보다 더 큰 손실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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